5.1 이삿짐은 인생의 무게 이야기의 시작은 이삿짐에서 출발한다. 어려서부터 이사를 다니는 건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매 년 혹은 두 해에 한 번은 이사를 갔다. 지금이야 '포장이사' 업체를 통하다 보니 수월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어려서는 그 짐을 일주일 전부터 가족 모두가 정리하고 포장하고 묶고 담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이사는 나이 50 가까운 현재도 진행형이다. 명 년이면 나는 다시 이삿짐을 싸야 한다.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에서 조만간 시골로 가 정착을 하거나 도심 속 협소주택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평생 이사를 삶의 한 축이고 과정으로 살다 보니 이사를 통해서 한가지 얻은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이삿짐의 무게가 곧 인생의 무게'라는 점이다. 많은 이삿짐을 힘겹게 옮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짐이 많으면 그만큼 인생에 달라붙은 무엇인가도 많다는 것이다. 과거 천주교 신부님 한 분이 교회로 부임하셨을 때 가방 하나만 들고 오시는 걸 봤다. 그분은 막 서품을 받은 젊은 사제였다. 그의 손에 들린 가방 하나가 달랑 그의 인생 전부 같았다. 그래, 짐이 많으면 세상에 미련이 많은 것이고 짐이 적을 수록 세상에 미련이 적고 인생은 가볍고 영혼은 자유로운 법 아니겠는가? 불가에서 무소유를 말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삶이 거칠고 공포스러울수록 우리는 가볍고 단순한 삶을 찾게 되는 법은 아닐까? 최근 서점에 가 보면 눈에 들어오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심플 라이프'를 콘셉트로 하는 책이다. 이미 여러 권이 출판되어 있었다. 사실 이러한 경향, 그러니까 '심플 라이프'라는 경향이 새롭거나 특별하지는 않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역사 속에서 이어져 내려왔던 개념이다.좀 더 확장해서 얘기하자면, 이런 경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지향성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때로는 라이프 스타일로 때로는 예술적 콘셉트로 또는 철학적 주제로 이 경향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소실점에서 모두 만나게 되는 게 바로 단순함이 가져다주는 근본적인 '평화'다.'평화'. 사실 이 말은 여기서 매우 추상적이고 자의적이며 나의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하지만 단순함을 뒤쫓는 사람들 모두가 원하는 모양새는 어쩌면 매우 흡사하거나 심지어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나는 단언한다. 그걸 애써 말로 표현하자니 '평화'라는 말이 떠오른 것이다. 가깝게는 '무인양품(無印良品)'과 'APPLE'의 예를 찾을 수 있고 조금 멀리 가면 '미니멀리즘', 더 멀리는 오캄사람 윌리엄의 '면도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함이 가져다주는 효과 혹은 결과는 공통적으로 특별한 무엇인가를 획득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보다 근본적이고 보다 명료하며 보다 자유롭고 보다 여백이 있고 보다 평화롭다. 이런 단순함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와 삶의 소실점에 다다르면 우리는 어쩌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를 만나게 되거나 행하는 모든 것이 불유구(不踰矩)에 이를 수 있을 듯싶다. 언제나처럼 나는 항상 마지막 질문에 이 한 가지를 던진다.'자,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자신을 규정할 때 '커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커피장이 또는 커피로 밥 먹는 사람이란 의미다. 따라서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커피와 맞닿아 있기 마련이다.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의 평화를 늘 실천하고 살고 싶은 마음은 내게 일종의 주체할 수 없이 요동치는 본능 같은 것이다.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나는 평화를 얻고 활기를 되찾으며 삶의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 그 경향성은 나의 본질이고 내 아이덴티티의 근원적인 뿌리다. 커피 하는 사람인 지금 내 안에서 솓구치는 욕망은 바로 그것을 '커피'라는 것을 통해 방법적으로 구조적으로 근원적으로 적용하고 실현 가능한지를 묻고 있다. 그게 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가 바란다고 그 모습을 갖추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고 또 꼭 그럴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커피를 통해 내 이런 본능을 표현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혹은 불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이고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는지, 그래서 커피가 커피다움을 잃지 않는 경계선 안에서 나는 어디까지 내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지 모험을 떠나고 싶다. 자, 이제 짐을 싸고 문을 열고 작은 호빗처럼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데, 이 모험은 실패할 수도 어쩌면 다른 무엇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터, 우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옷깃으로 여미면서 길은 나선다.